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거장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니체는 물론, 톨스토이, 아인슈타인, 찰스 다윈, 에밀 졸라, 프란츠 카프가 등 셀 수 없이 많다. 톨스토이는 유일하게 쇼펜하우어 초상화만 집에 걸어두었을 정도라고 한다. 니체는 자신이 철학을 하게 된 것은 쇼펜하우어 때문이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세 명의 초상화를 걸어두었는데 2명은 과학자이고 1명이 쇼펜하우어였다. 이렇게 많고, 깊은 영향을 끼친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도대체 어떤 내용인 걸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만나보았다.
<<저자소개>>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서양 철학뿐만 아니라 동양철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됐다. 초반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40대 중반부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세계의 명사들이 사랑한 철학자이다.
<<저자의 말>>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 쇼펜하우어의 가장 유명한 말이다. 첫 번째 고통은 가짜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부, 명예, 출세 등과 같은.. 두 번째 고통은 진짜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진짜 행복은 고통을 줄이고 피하고 견디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짜 행복을 좇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1. 행복하려면 고통을 줄이는 것이 빠르다.
욕망을 자각하지 않으면 고통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어날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은 신체의 일부분인 뇌의 기능에 따른 것으로 보았다. 인간의 이성도 한낱 '욕망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통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생존을 위한 욕망을 충족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욕망, 집착, 소유욕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기 마련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욕망의 파도를 잘 다스리는 것이 마음의 행복을 얻는 출발점이다. 우리 인간은 결핍이 늘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알고 다스릴 수 있어야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2.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
삶은 시계추처럼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사실 이 두 가지가 삶의 궁극적인 요소다. 쇼펜하우어는 불행의 두 가지 원인으로 고통과 권태를 꼽는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서 고통에 시달린다면 돈이 많은 사람은 넘쳐나는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서 삶에 권태를 느낀다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변덕스러운 감정에 달려있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의 인간이 불행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욕이 너무 쉽게 충족되어 욕망의 대상이 제거되면 인간은 무서우리만큼 공허와 무료감에 빠진다. 인간의 감정은 왕복 운동을 하는 시계추처럼 유동적이다. 따라서 영원한 충족과 행복감은 없다. 고통과 무료함은 한쪽이 멀어질수록 다른 쪽이 다가온다. 우리는 욕구의 결핍과 욕구의 과잉을 피해야 한다. 양극단은 불행이다. 끊임없는 공부와 사색, 통찰로 욕망을 잘 다스려야 한다.
이는 동양의 중용과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중용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중용은 중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편향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일을 할 때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인간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중용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원래 갖고 있던 것의 가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욕망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 거듭변신한다. 이것은 결핍에 따른 고통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대상에서 찾는 행복이란 오래가지 않는다. 막상 채워지면 당연하게 여기고 다른 새로운 것에 결핍을 느낀다. 이에는 긍정적인 호기심도 있다. 자신의 결핍을 인식하고 채우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호기심은 외부로부터 끊임없는 자극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밖에서 새로운 것을 찾지 말고 원래 갖고 있던 것의 가치를 되새겨 봐야 된다.
3.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하나의 고통은 열 개의 쾌락에 맞먹는 힘을 가졌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중에서 인간은 행복을 잘 모르지만 불행은 잘 인지한다. 그래서 부와 명예를 가졌을 때는 그 가치를 모르다가 그것이 사라지면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은 쾌락의 적극적인 추구가 아니라 고통의 감소 또는 결핍의 지양이라는 소극적 입장이다. 쾌락보다 고통의 지속도나 강도가 훨씬 강하다. 때문에 고통의 원인을 먼저 없애는 것이 쾌락을 찾는 것보다 더 현명하다. 갖고 있을 때 그 가치를 모르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별문제 없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감사함을 느끼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감사함을 느끼고, 나의 성찰과 성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4. 진정한 행복이란?
1) 진정한 행복을 아는 것은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욕망과 능력을 정확히 알고 이 두 가지를 일치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와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진정 알아야만 타고난 기질과 본능에 지배를 받지 않고 뭔가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행복의 90%는 건강에 좌우된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의 첫 번째 조건으로 건강을 꼽는다. 운동을 하지 않고 하루종일 앉아 있는 경우 건강의 균형이 깨져 내적 안정감을 해칠 수 있다. 우리의 행복은 명랑한 기분에 좌우되는데 그 기분은 건강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많은 책들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운동이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정말이지 내 몸에 간단한 운동이라도 선사하는 것이 얼마나 나를 아끼는 일인지 잊지 말자.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것은 사물의 객관적인 모습이 아니라 사물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결과다.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3) 마음의 안정이 없는 행복은 있을 수 없다.
행복을 위해서는 시기심, 질투, 분노 등으로부터 흔들림 없이 평정을 찾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음식을 절제하면 몸이 건강해지듯이 외적인 자극의 비중을 줄여야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줄여라. 무료함을 야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될 수 있는 한 관계를 단순화하고 생활 방식을 극히 단조롭게 해야 행복해진다.
둘째, 질투를 경계하라. 다른 사림이 행복하다고 괴로워하는 자는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보다 형편이 나아 보이는 사람보다 나쁜 사람을 살펴보는 방법도 괜찮다. 우리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바라보는 것이 효과적인 위안이 된다.
셋째, 큰 희망을 걸지 마라. 우리는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서 존재하는 일에 감사해야 한다.
넷째, 세상에는 거짓이 많다는 점을 알아라. 가짜의 겉모습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행복도 그런 바깥에 드러나는 모습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행복은 그런 화려한 겉모습에 있지 않다.
4) 인생의 무게 중심을 밖에서 안으로 옮겨라
무게중심이 바깥에 있는 사람은 출세, 승진, 명예, 부 등을 추구하며 각종 모임 등에 빠져서 즐거움을 추구한다. 무게 중심이 안에 있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예술, 시, 문학, 철학 등을 가까이하게 된다. 이런 정신적인 즐거움은 속물이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남들이 인정해 줄 때, 남들 사이에서 우쭐함을 느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은 남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니 불행도 같이 좇아 다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성장했을 때, 내가 깨달았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통제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다. 통제권을 쥐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5.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1)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마라.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국 타인을 자신의 욕망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강제하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다 보면 아픔을 주는 막말을 하게 된다. "상대를 공경하되, 거리를 두라"라고 했다.
인간은 내면이 공허하고 삶이 단조로울 때 다른 사람의 온기를 필요로 한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공감받고, 지지받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타인과 생각의 차이를 느껴 실망하면 관계가 다시 멀어진다. 현명한 사람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불을 쬐지만 어리석은 자는 불에 손을 짚어 넣고 화상을 입는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사교의 욕망이 생기는 것은 자신이 불행하다는 반증이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데서 생긴다. 많은 인간관계로 결핍을 채우려고 하지만 인간관계는 자칫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홀로서기와 타인과 함께하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2) 행복은 찰나이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이란 많은 경우 결핍에서 충족으로 넘어가는 짧은 순간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늘 결핍은 인간에게 고통이지만 충족에서 과잉으로 넘어가면 권태, 지루함의 감정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행복은 그 짧은 만족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행복을 즐기는 순간은 찰나와 같이 금방 지나간다. 영원하고 지속적인 행복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작은 행복감에서 만족할 수 있어야 된다. 행복은 멀고 크고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가까운 곳에 있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그 기쁨이 몇 달씩 지속되지는 않는다. 행복은 빨리 잊힌다. 결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식이 몸을 건강하게 하고 폭식이 건강을 해치듯이 행복은 소소한 것에서 찾아야 작고 짧은 행복을 즐길 수 있다. 행복을 많이 느끼고자 한다면 자잘 자잘한 찰나의 행복들을 놓치지 말자!!
3) 타인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걱정에 살고 있다. 자신이 지는 참된 모습보다는 남의 마음속에 깃든 자신의 모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은 정작 나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 또한 나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 타인의 마음은 객관적이지 않다. 특히 칭찬이 아니라 비난인 경우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보면 무식하고 편견이 좁고 빈약한 경우도 있다. 그런 평가는 무시하는 것이 낫다.
예전에 다른 사람들에 비칠 모습 때문에 나의 가족에게 짜증을 낸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 비칠 모습보다 나의 가족의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이 나를 의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내가 깨달은 것만큼 이 나의 세계다.
개인의 행복은 지위나 재산과 같은 외적인 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여 의미를 구성하는 의식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느냐 비관적으로 보느냐는 그 사람의 관점, 정신력에 비례하는 것이다. 행복은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차이이다. 내가 행복하고자 한다면 행복할 수 있다. 결정권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행복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행복은 고통을 줄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 행복은 찰나이기에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은 타인(외부)에서 찾으려 한다면 얻을 수 없다는 것과 행복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행복은 인간은 결핍을 계속해서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이 책을 통해 행복이 어떤 것인가를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건강하기'까지가 행복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마흔은 넘어야 이해되는 삶의 깨달음이 녹아있는 그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젊은 날에도 이런 공감이 되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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